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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복음묵상

복음 묵상 :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23.7.22.)

by 복곰(a.k.a. 나비곰) 2023.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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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antonio Franceschini - Noli Me Tangere(Touch me not) - Google Art Project


요한 20,1 - 2, 11 - 18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빈 무덤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울고 있다 예수님을 만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만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하다가 예수님께서 ‘마리아야’하고 부르시자 그때서야 예수님을 알아보고 ‘라뿌니!‘하고 대답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빈 무덤을 발견했을 때 왜 울고 있었을까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무덤이 파헤쳐져 있고 안치했던 시신이 없어진 걸 알게 됐을 때 저는 슬픔보다 이해할 수 없는 일과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에 화가 먼저 날 것 같습니다. 누가 그랬는지, 왜 그랬는지 관리자에게 따져 묻고 성질을 내는 모습이 상상됩니다. 그런데 마리아 막달레나는 빈 무덤 앞에서 슬퍼서 울고 있었습니다.

당시 마리아 막달레나의 입장이 되어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자신이 사랑하고 따랐던 스승님이 억울하게 고통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은 그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스승님을 무덤에 모셨는데 다음날 와보니 무덤이 열려있고 시신이 없어져 있습니다. 누구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막을 수도 없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집니다. 자신의 무력함과 억울함이 밀려 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모진 고난을 겪는 것도 막지 못하고 무덤도 누군가 치우고 애도하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하니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느끼고 한없이 슬퍼집니다. 자신의 무력함이 슬프고, 예수님의 시신도 지키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하고, 아무 잘못도 없는 예수님을 이렇게 대하는 세상이 원망스럽고 여러 생각들이 겹쳐져 더 서럽고 슬픈 눈물만 흐릅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그렇게 애타게 찾던 주님이신데 마리아 막달레나는 알아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이름을 부르시고 나서야 나는 그분의 존재를 느낍니다. 우리도 이러한 상황에서 끝까지 예수님을 돌보고 예수님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요? 내가 믿었던 것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금방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살 길을 찾아 떠나지는 않을까요? 마리아 막달레나의 울음은 어떻게 보면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의 믿음의 눈물을 아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을 찾는 이들 곁에 계십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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