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7:22-27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성전세와 관련하여 베드로와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지만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서 낚시로 잡은 물고기 입에서 나온 돈으로 베드로와 예수님의 성전세를 내라고 하십니다.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라는 말이 아무래도 이상하게 생각되어 영문으로 된 성경을 찾아 봤습니다. 미국 가톨릭주교회의(https://bible.usccb.org/)에서 제공하는 성경에는 해당 부분이 'But that we may not offend them' 으로 적혀있습니다. 한국어와 영어의 문화적 차이나 언어적 표현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굉장히 다르게 다가오는 부분입니다.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라는 말은 힘이 약한 자나 자위가 낮은 자가 힘이 센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라는 느낌이 강한 반면, 영어 성경의 'we may not offend them'이라는 표현은 가만히 있는 사람을 굳이 공격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집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은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지만 '그들을 공격하지 않기 위해' 성전세를 내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이를 불의에 타협하는 비굴한 모습으로 볼 수 있을까요? 이것이 성전세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다른 불의나 세상의 잘못과 관련된 문제라면 예수님은 이러한 타협안을 제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의나 세상의 악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전세는 그것을 낼 필요가 없는 자녀들에게 요구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하느님께 바치는 세금, 즉 하느님 나라를 위해 사용될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잘못을 따지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모든 것에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실제로 무엇을 위한 것인지 살펴본다면 단지 세상에 대한 불만이나 비뚤어진 마음, 자기만족을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보기에 세상은 잘못된 것들이 너무나 많겠지만 그 모든 것들을 바로잡기보다 정말 필요한 일들을 위해 힘쓰시는 건 아닌가 묵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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