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9:51 - 62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오늘 복음을 읽다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라'하신 말씀에 먼저 아버지의 장례를 지내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라'고 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버지의 장례도 치르지 말라는 말씀으로 들려 패륜적인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게 그렇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우리는 여기서 '죽은 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죽음은 '영적인 죽음'과 '육적인 죽음'이 있습니다. '육적인 죽음'은 우리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 마지막 날에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부활하리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다만 '영적인 죽음'은 다릅니다.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그에 따라 살기를 자발적으로 거부한 이들이며 내세에 대한 희망이 없는 이들을 말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회개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지 않는 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예수님 말씀에서 '죽은 이'는 바로 이러한 '영적인 죽음'을 당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쉽게 납득할 수 있습니다.
또 이어서 말씀하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는 말씀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됩니다. '영적인 죽음'상태에 있는 이들이 장례를 치르는 동안 우리는 그 장례식에 참석해 하느님 나라을 알려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평소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살지 않지만 장례식에서는 이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리에서는 다른 이들이 하느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이기 쉽습니다.
'영적인 죽음'에 있는 이들이 이를 듣기 거부한다면 우리는 장례식장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서 하느님 나라를 알릴 수도 있습니다. 한 명이라도 잃어버린 양을 찾을 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일을 꼭 거리에 서서 외치는 것으로 단편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말 뿐이 아닌 생각과 행동으로 이를 실천해야 합니다.
오늘도 하느님 나라를 주위에 알리는 하루가 되길 기도드립니다.
'단상 > 복음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음묵상 :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22.07.12) (0) | 2022.07.12 |
---|---|
복음묵상 :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22.07.05) (0) | 2022.07.05 |
복음묵상 : 좋은 열매(22.06.22) (0) | 2022.06.22 |
복음묵상 :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22.06.16) (0) | 2022.06.16 |
복음묵상 : 상(22.06.15) (0) | 2022.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