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기발한 생각과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 중에서도 매우 뛰어난 지성과 매우 훌륭한 이야기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테드창이다. 테드창은 1967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대만인 이민 1세대 부모님을 둔 미국인인 그는 브라운 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과 물리학을 전공했다. 대학교를 갓 졸업한 만23세때인 1990년 첫 작품 『바빌론의 탑』을 출간하고 네뷸러상을 최연소로 수상한다. 네뷸러상은 미국 SF 판타지 작가 협회가 주최하는 SF문학상으로 휴고상과 함께 권위있는 상 중 하나이다. 이후 2019년까지 총 17개의 단편, 2개의 작품집을 발간하면서 각종 SF문학상을 휩쓸며 현존하는 최고의 SF소설가가 된다. 테드창의 소설은 우리에게 《컨택트》(2016, Arrival)라는 영화로 더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2002년 출판되고 2004년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2016년 엘리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된 이유이기도 하다.
1. 기발한 소재와 그에 적합한 표현방식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포함된 8개의 단편작품(『바빌론의 탑』, 『영으로 나누면』, 『이해』, 『네 인생의 이야기』, 『인류 과학의 진화』, 『일흔두 글자』, 『지옥은 신의 부재』,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은 하나 하나가 참신한 소재와 그 소재의 맛을 더 잘 살리기 위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실린 단편들이 1990년부터 2002년까지의 작품인 것을 감안하면 더욱 놀랍다. 단편들을 읽으면서 무언가 유사한 작품, 책이나 영화, 드라마가 떠올랐다면 이것들이 테드창의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기발한 소재만큼이나 각 소재에 맞는 글의 형태는 작가가 얼마나 한 작품 한 작품에 심혈을 기울이고 완벽을 기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영으로 나누면』에서 주인공은 기존 수학체계를 무너뜨릴 만한 발견을 한다. 그리고 이를 주인공과 남편의 입장, 생각의 흐름에 대입하여 글을 구성한다. 소설 안에서 a=1, b=2라 가정하고 a와 b가 같다는 것을 주인공이 증명하게 되는데, 주인공의 시선을 1a, 남편의 시선을 1b로 나누어 전개하다 마지막에 a=b의 문단에서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부부가 결국에는 같은 결론에 이르는 연출을 보여준다.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에서는 소설이 아닌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한편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들도록 문단 배치를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들이 테드창이라는 작가가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17개의 단편밖에 쓰지 못한 이유라는 생각도 든다. 소재를 찾아내더라도 이를 어떤 식으로 표현하고 풀어낼 지 글의 형식까지 고민하는 것은 작가이면서 영상 제작자 내지 조각가로서의 역할을 해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작품집 마지막에는 각 작품의 창작노트가 실려 있는데 여기서 작품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 더욱 재미있게 소설을 음미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2. 철학과 종교에 대한 깊은 사유
테드창의 소설은 과학적인 사실이나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주제는 철학적이면서도 종교적인 경우가 많다. 그가 인문학적인 SF작가라 불리는 이유이다. 『바빌론의 탑』과 『지옥은 신의 부재』는 제목부터 종교적이며, 그 내용적인 면에서도 종교의 본질에 대해 건드리는 부분들이 많다. 특히 『지옥은 신의 부재』에 등장하는 하느님이 계신 천국과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지옥 중 어느 곳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화두는 종교를 가진 신앙인들에게 더욱 깊은 묵상거리를 제공한다.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는 넷플릭스 시리즈인 《블랙미러》 시즌4의 한 에피소드인 아크엔젤을 떠올리게 했다. 외모에 대한 편견을 인위적으로 뇌의 기능을 조절할 수 있을 때 이것은 세상을 더 평등하게 만들까 아니면 더 불행하게 만들까? 그리고 이러한 선택을 스스로 할 수 없는 어린 아이에게 부모가 강제하는 것은 과연 정당할까? 아직은 이런 기술이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이를 보면서 어린 아이에게 종교를 강제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테드창의 작품을 읽다 보면 미래지향적인 기술에 호의적일 것 같은데 최근 뉴요커에 실린 그의 기고문을 읽어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의 정체성은 과학도나 기술자보다 작가에 초점에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뉴요커에 실린 테드창의 기고문 'ChatGPT는 웹의 흐릿한 JPEG다'). SF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내가 과학소설을 읽는지 재미있는 철학책을 읽고 있는지 헷갈리는 기분이 드는 이유도 작가의 그런 성향과 관계가 깊을 것이다. 너무나 매력적인 이 책을 읽다보면 문득 『네 인생의 이야기』외 다른 단편들도 영상으로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몇몇 작품들은 영상화 작업중이라는데 소설만큼이나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만나 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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