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아자르 혹은 로맹가리는 1914년 5월 21일 러시아에서 태어났다.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 상을 받고 가명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으로 2번째 공쿠르 상을 받는다. 공쿠르 상은 한 작가에게 평생 한번만 주어지는 프랑스의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이지만 로맹가리는 유일한 2회 수상자가 된다. 로맹가리는 작가로도 유명세를 떨쳤지만 작가로 데뷔하기 전의 삶도 화려하다. 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 공군 장교로 참전하여 레지옹 도뇌르 훈장(프랑스 훈장 가운데 최고위 훈장, 5개 등급으로 나뉨)을 받고, 1941년부터 1961년까지는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두각을 보이더라도 곧 이를 시기, 질투하는 이들의 공격을 받기 쉽다. 로맹가리 또한 『하늘의 뿌리』로 첫 번째 공쿠르 상을 받은 후 발표 하는 작품마다 비평가들의 혹평을 받게 된다. 그리고 친한 지인으로부터도 퇴물 취급을 받던 로맹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간다.
로맹가리는 왜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출판하는 걸 '선택'했을까? 자신의 '선택'과 관계없이 자신에게 씌워진 기성작가 '로맹가리'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고자 해서 였을까? 자기앞의 생에서 다루는 주제도 이러한 '선택'과 깊은 관련이 있다.
1. '선택'의 의미와 죽음
로자 아줌마와 함께 사는 아이들은 모두 몸파는 여자들의 자식이다. 이들은 자신의 선택과 관계없이 태어나고 로자 아줌마에게 맡겨졌다. 로자 아줌마는 그런 아이들을 자신의 선택에 의해 돌보고 생활을 꾸려나가지만 자신의 마지막을 자신이 '선택'하지 못할까봐 두려워 한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의 결정에 의해 요양병원에 보내지고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생명유지 장치에 의해 힘겨운 삶을 유지하는 것이 로자 아줌마가 가장 두려워 하는 일이다. 이러한 로자 아줌마의 마지막을 자신이 돌보던 모모가 지켜주고 함께 해준다. 로자 아줌마가 '선택'한 삶의 마지막 모습을 자신의 삶을 선택한 적 없는 '모모'가 지켜주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다.
로자 아줌마의 시신 곁에서 오랜 시간 머물며 시신에 립스틱 등을 발라주며 화장하는 모습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한 로자 아줌마의 마지막을 인간미 있는 모습으로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스스로 선택한 삶의 마지막을 축하하는 의미로 아름답게 꾸미고자 한 행동으로 바라본다면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다.
2. 사회적 약자들과 그들의 연대
그리고 로자 아줌마와 아이들이 사는 건물에는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이 모여 살고 있다. 그들은 한명 한명의 개개인으로는 약한 존재들이지만 로자 아줌마가 스스로를 돌볼 수 없게 되자 서로 도움을 주고 함께 하며 연대한다. 힘든 삶이지만 모모가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 또한 자신에게 따뜻한 관심을 가져다 주는 이웃들 덕분이었다. 모모에게 이슬람 교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지식을 알려준 하밀 할아버지, 어려운 상황에도 여러 도움을 주는 롤라 아줌마, 로자 아줌마가 바람쐴 수 있도록 들어서 날라주는 이웃들이 모모를 지켜주는 이웃들의 힘이다.
로자 아줌마도 함께 사는 아이들도 사실은 다 약자들이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도 다른 측면의 연대이다. 로자 아줌마는 아이들을 돌보는 보호자의 역할이지만 사실 그 아이들이 없으면 살아가기 힘든 로자 아줌마이기도 하다. 모모가 자신을 떠날까봐 모모의 나이를 속이면서 까지 곁에 두려고 한 것도 로자 아줌마의 내면을 반영한 부분이다. 이러한 연대는 모모를 돌보지 않고 이런 곳에 맡겨둔 친아버지가 등장했을 때도 이상한 형태로 발휘된다.
자기 앞의 생을 쓰면서 로맹가리는 자기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그렸을까? 아마도 로자 아줌마처럼 자신의 마지막은 자신이 '선택'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삶을 마감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로맹가리가 이 소설을 발표할 때는 로자 아줌마의 선택(소극적 안락사)이 사회적으로 큰 논란거리였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지금은 이러한 소극적 안락사가 아닌 적극적 안락사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선택과 관계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개인의 선택을 어느 선까지 존중해줄 것인지는 오래된 논쟁거리이다. 하지만 그 논의가 점점 진전되어 온 것 또한 중요한 점이다. 자살을 개인의 선택 문제로 볼 수 있는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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